‘사이비 불용문자’란 전통시대로부터 내려오는 본래의 불용문자가 아닌데도, 일부 상혼에 물든 현대의 작명가들이 영업의 수단으로 삼고자 대폭 숫자를 늘려놓은 ‘불용문자라고 주장하는 한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본래의 불용문자가 아니므로, 이들을 이름글자에 사용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이러한 사이비 불용문자의 출현은 그 시기를 아무리 이르게 잡더라도 일제시대 후반기 이후의 일로, 전통시대를 넘어 자본주의가 도입되면서 작명가들이 상호를 내걸고 신문지상에 영업광고를 내보내기 시작한 시점과 대략 일치합니다.
작명이 자본주의의 상혼에 물들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이비 불용문자의 출현은 크게 두 가지 폐해를 낳고 있습니다.
첫째는 일부 사기꾼 작명가들이 고객에게 겁을 주어 거액의 개명 사례비를 요구하는 수단으로 삼고 있습니다(
관련 글 링크 참조).
둘째는 ‘불용문자라고 주장하는 한자들’의 숫자를 대폭 늘려놓았고 지금도 계속 늘어나고 있기에, 이를 신뢰할 경우 작명의 제약이 너무 커서 좋은 이름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에 따라 우리나라의 작명문화가 심히 왜곡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에 본 협회에서는 이러한 사이비 불용문자의 폐해가 더 이상 방치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판단 하에, 그 퇴치를 협회의 주요 소임 중 하나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를 퇴치하기 위한 협회의 방법론은, 사이비 불용문자가 현대에 이르러 갑자기 주장되기 시작한 것으로 역사적 근거를 결여한 것임을 학술적으로 밝히는 것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해당 한자가 전통시대의 명망가 이름에 사용된 구체적 사례를 제시하고자 합니다.
원래 불용문자의 금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매우 이른 시기의 역사 기록에 나타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헌에 “이러이러한 한자가 불용문자”라고 적시된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우리 선조들이 일상생활에서 이름을 지을 때
자연스레 부적절한 한자의 사용을 피하는 역사적 과정을 통해 금기가 형성되어 내려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특정 시기, 특정 지역만을 놓고 보면 판단하는 사람에 따라 불용문자의 범위에 대한 생각이 다소 다를 수 있습니다. 이 점을 이용해 현대의 일부 작명가들이 이 글자 저 글자를 끌어다 모두 불용문자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불용문자의 금기는 어디까지나 면면히 이어내려온 역사적 과정을 거치며 이러이러한 한자가 불용문자라는 암묵적 합의가 형성되고, 그 검증 또한 이루어진 것입니다. 장구한 세월의 무게가 실려있는 것이며, 우리 선조들로부터
오늘날의 후손에게 전해내려온 문화유산이자 지적 자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이비 불용문자’의 경우 전통시대의 명망가 이름에 그 한자가 사용되었다는 구체적 작명사례를 제시함으로써 역사적 근거를 결여한 것임을 밝힐 수 있습니다.
본 협회에서는 이를 위해 고려와 조선 두 왕조에서 문과에 급제한 16,123명의 선조들의 이름한자를 일일이 확인하였습니다.
이들은 한문을 일상의 문자언어로 사용하던 전통시대에 학식과 명망을 갖춘 이들이며, 문과에 급제함으로써 개인의 영광은 물론 가문의 명예를 드높인 인재들입니다. 이들의 이름글자에 해당 한자가 사용되었다는 것은,
그 한자가 불용문자가 아니라는 객관적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이하에서는 사이비 불용문자의 사례를 몇 가지 부류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① 좋은 뜻의 한자가 정반대로 나쁜 작용을 불러온다고 주장되는 한자들:
可(옳을 가) 慶(경사 경) 光(빛 광) 貴(귀할 귀) 福(복 복) 眞(참 진) 孝(효도 효) 등
이상과 같이 좋은 뜻을 지닌 한자를 이름에 사용하면 오히려 정반대로 나쁜 작용을 미치게 된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福(복 복)자를 쓰면 도리어 빈천하게 되며, 眞(참 진)자를 쓰면 도리어 참되지 못하고 허세를 부리는
사람이 되고, 孝(효도 효)자를 쓰면 도리어 불효하게 될 뿐만 아니라 부모가 단명하게 된다는 식이다.
이와 같이 정반대로 작용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물극필반(物極必反)’이라는 『주역(周易)』의 가르침을 드는 경우가 많다. “사물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돌아선다”는 『주역』의 가르침은
이 세상의 근본법칙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물극(物極)’, 즉 사물이 극에 달했을 때 적용되는 것이지 아무 곳에나 갖다붙이는 말이 아니다. 전통시대에 ‘물극필반’
의 가르침 때문에 꺼렸던 불용문자는 가득 찬 숫자인 十(열 십)자 뿐이었던 것이다(위 2번 글 ④항 참조). 그러므로 이러한 한자들을 이름에 사용하는 것은 ‘물극(物極)’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아무 문제가 없다.
다음과 같은 작명사례를 통해서도 이들이 전통시대에 불용문자가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福(복)
민수복閔壽福, 조선시대 문과급제(성종)
노경복盧景福, 조선시대 문과급제(선조)
眞(진)
김효진金孝眞, 조선시대 문과급제(영조)
이진순李眞淳, 조선시대 문과급제(경종)
孝(효)
윤효종尹孝宗, 조선시대 문과급제(태종)
김효맹金孝孟, 조선시대 문과급제(세종)
각기 두 경우씩만 사례로 들었지만, 세 글자 모두 뜻이 좋기 때문에 더 많은 사례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뜻이 좋기에 인명에 많이 채택하는 한자들을 불용문자라고 주장함으로써 개명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물극필반(物極必反)’이라는 그럴 듯해 보이는 논리를 아무 데나 갖다붙이는 것이 일부 사기꾼 작명가들의 수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나 효성스런 자녀가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사용한 孝(효도 효)자에 대해, 도리어 불효하게 될 뿐만 아니라 부모가 단명하게 된다고 겁을 주는 경우에 이르면 참으로 악랄한 수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은 수법이 그대로 방치되면 결국 좋은 뜻을 지닌 한자라면 어느 글자에나 ‘물극필반’을 갖다붙일 수 있게 된다. 실제로 그렇게 해서 이 부류의 사이비 불용한자는 지금도 나날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이 때문에 본 협회에서는 한국의 작명학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사이비 불용문자의 퇴치가 무엇보다 급선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② 식물이름:
松(소나무 송) 梅(매화나무 매) 蘭(난초 난) 菊(국화 국) 竹(대나무 죽)
식물이름을 불용문자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대개 동물이름과 묶어서 하나의 불용문자 그룹으로 제시하곤 한다.
하지만 동물이름의 경우 이름글자에 넣으면 그 사람이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라는 뜻이 되기에 불용문자로 삼는 것 뿐이다(자세한 내용은
관련 글 링크의 ②항 참조). 따라서 식물이름의 경우는 사람을 욕되게 하는 뜻이 없기 때문에 불용문자가 아니다. 위의 매난국죽(梅蘭菊竹) 사군자와 소나무[松]는 오히려 전통시대 사대부들이 그 절개를 숭상하는 상징물이었다. 다음과 같은 작명사례를 보면 식물이름이 불용문자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문송자文松子, 조선시대 문과급제(세종)
이난수李蘭秀, 조선시대 문과급제(명종)
권명국權命菊, 조선시대 문과급제(고종)
③ 숫자 단위 문자:
百(일백 백) 千(일천 천) 萬·万(일만 만) 億(억 억) 兆(조 조)
十(열 십)자의 경우는 가득 찬 숫자이기에 동양의 상수학(象數學) 전통에서 이 글자를 이름에 사용하는 것을 꺼리므로 불용문자가 맞다. 하지만 이 한 글자를 꺼리는 것일 뿐 위의 다섯 글자는 불용문자가 아니다. 상수학은 1부터 10까지 숫자의 의미를 중시하는 것으로, 10을 넘어선 숫자들은 기피대상이 아니다.
이백형李百亨, 조선시대 문과급제(정조)
송천희宋千喜, 조선시대 문과급제(성종)
④ 갈라지는 문자:
林(수풀 림) 順(순할 순) 任(맡길 임) 州(고을 주) 昌(창성할 창) 川(내 천) 喆(밝을 철) 好(좋아할 호) 用(쓸 용)
위의 한자들은 가로나 세로로 갈라진다고 해서 흉한 글자로 치부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하지만 그런 식의 논리라면 한자의 태반이 갈라지는 문자라서 흉한 글자가 되어버린다. 이는 전혀 근거없는 낭설일 뿐이다.
조중림曺仲林, 조선시대 문과급제(태조)
박제순朴悌順, 조선시대 문과급제(세조)
이성임李聖任, 조선시대 문과급제(선조)
⑤ 오행·천간·지지 문자:
오행: 木(목) 火(화) 土(토) 金(금) 水(수)
천간: 甲(갑) 乙 (을) 丙(병) 丁(정) 戊(무) 己(기) 庚(경) 辛(신) 壬(임) 癸(계)
지지: 子(자) 丑(축) 寅(인) 卯(묘) 辰(진) 巳(사) 午(오) 未(미) 申(신) 酉(유) 戌(술) 亥(해)
오행·천간·지지 문자의 경우 영험한 작용력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한 개인의 이름글자에 함부로 사용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주장이 있으나 근거없는 낭설일 뿐이다.
윤금손尹金孫, 조선시대 문과급제(성종)
최수청崔水淸, 조선시대 문과급제(중종)
이갑룡李甲龍, 조선시대 문과급제(영조)
임을손林乙孫, 조선시대 문과급제(성종)
문송자文松子, 조선시대 문과급제(세종)
최자축崔自丑, 조선시대 문과급제(성종)
⑥ 약형문자(弱形文字):
斤(도끼 근) 半(반 반) 市(저자 시) 平(평평할 평) 戶(지게 호) 年(해 년) 帛(비단 백) 幸(다행 행) 科(과정 과)
약형문자(弱形文字)란 글자의 모양이 힘이 빠진 듯 약해보이기 때문에 이름글자에 사용하면 좋지 않다고 언급되는 글자들이다. 하지만 아래와 같은 작명사례를 보면 역사적 근거가 없는 낭설임을 알 수 있다.
斤(도끼 근) 市(저자 시) 戶(지게 호) 帛(비단 백) 幸(다행 행)자의 경우는 16,123명의 문과급제자 이름 중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이들 글자가 이름으로 선택되지 않은 이유는 그 모양이 힘이 빠진 듯 약해보여서 불길하기 때문이 아니라, 해당 글자의 의미 자체가 이름글자로 선호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다행 행幸에는 ‘요행’이라는 뜻이 있다).
김반천金半千, 조선시대 문과급제(중종)
성세평成世平, 조선시대 문과급제(명종)
정대년鄭大年, 조선시대 문과급제(중종)
김과金科, 고려시대 문과급제(창왕)
⑦ 허형문자(虛形文字):
入(들 입) 八(여덟 팔) 弓(활 궁) 去(갈 거) 方(모 방) 占(점칠 점) 共(함께 공) 門(문 문) 行(갈 행)
허형문자(虛形文字)란 글자 모양의 짜임새가 허술해서 부실한 느낌을 주기에 이름글자에 사용하면 좋지 않다고 언급되는 글자들이다. 하지만 아래와 같은 작명사례를 보면 역사적 근거가 없는 낭설임을 알 수 있다.
入(들 입) 弓(활 궁) 去(갈 거) 占(점칠 점) 共(함께 공)자의 경우는 문과급제자들의 이름 중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이들 글자가 이름으로 쓰이지 않은 이유는 그 글자 모양의 짜임새가 허술해서 불길하기 때문이 아니라 해당 글자의 의미 자체가 이름글자로 선호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원팔李元八, 조선시대 문과급제(정조)
구방경具方慶, 조선시대 문과급제(명종)
김기문金起門, 조선시대 문과급제(선조)
구진행具晉行, 조선시대 문과급제(정조)
⑧ 신체 이름:
脚(다리 각) 肩(어깨 견) 口(입 구) 頭(머리 두) 目(눈 목) 背(등 배) 鼻(코 비) 手(손 수) 首(머리 수) 眼(눈 안) 胃(밥통 위) 耳(귀 이) 足(발 족) 胸(가슴 흉)
신체 이름에 해당하는 한자를 불용문자라고 주장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하지만 아래와 같은 작명사례를 보면 역사적 근거가 없는 낭설임을 알 수 있다.
위 한자들 중 다수를 문과급제자의 이름 중에서 찾아볼 수 없긴 하지만, 이는 신체의 이름을 이름글자에 사용하면 불길하기 때문이 아니라 해당 글자를 이름글자로 사용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불용문자가 아니라 이름글자로 추천되지 않는 문자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이수경李首慶, 조선시대 문과급제(중종)
권민수權敏手, 조선시대 문과급제(성종)
⑨ 어려운 한자:
羹(국 갱) 驥(천리마 기) 囊(주머니 낭) 戇(어리석을 당) 鸞(난새 란) 磊(돌무더기 뢰) 鼈(자라 별) 彛(떳떳할 이) 鑿(뚫을 착) 譃(망령된 말 후)
획수가 많아 복잡하고 어려운 한자의 경우도 이름글자로 추천할 수는 없다. 특히 오늘날은 한자의 사용이 일상화되지 않다보니 신세대일수록 한자를 어렵게 여긴다. 그런데 살아가다 보면 직접 손으로 자신의 이름한자를 써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이때 획수가 많아 복잡하고 어려운 한자를 손으로 삐뚤빼뚤 써놓으면 읽는 사람이 어떤 한자인지 알아보기도 어렵기 때문에 추천한자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름에 쓰면 불길한 불용문자인 것은 아니다. 다음과 같은 전통시대의 작명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특히 彛(떳떳할 이)자 같은 경우는 그 뜻이 좋기 때문에 다수의 이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정란李廷鸞, 조선시대 문과급제(선조)
김이섭金彛燮, 조선시대 문과급제(순조)
⑩ 발음이 둘 이상인 한자:
見(볼 견, 뵈올 현) 龜(거북 귀, 땅이름 구) 度(법도 도, 헤아릴 탁, 살 택) 樂(즐길 락, 노래 악, 좋아할 요) 易(바꿀 역, 쉬울 이) 車(수레 차·거) 宅(집 택, 댁 댁)
발음이 둘 이상인 한자도 이름글자로 추천할 수는 없다. ‘한용구(韓用龜)’는 조선시대에 영의정을 지낸 분의 이름인데 오늘날에도 그 발음이 ‘한용구’인지 ‘한용귀’인지 논란이 이는 형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의정까지 오른 분의 함자가 龜이기도 하다. 이처럼 영물인 龜(거북 귀)자를 이름에 넣고 싶으면 넣을 수 있는 것이다. 문과급제자들의 이름 중에서 굉장히 많은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度(법도 도)자의 경우 뜻이 좋기 때문에 역시 다수의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대체로 그 발음이 ‘도’로 쓰이는 경우가 압도적이기 때문에 발음에 혼란이 일어날 여지도 크지 않다.
樂(즐길 락)자의 경우도 뜻이 좋기 때문에 다수의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이해구李海龜, 조선시대 문과급제(명종)
김상도金相度, 조선시대 문과급제(영조)
김낙성金樂誠, 조선시대 문과급제(영조)